형효순

어제는 노래를 배웠다.

“때굴때굴 때굴때굴 도토리가 어디서 왔나 단풍잎 곱게 물든 산골짝에서 왔지” 

음이 틀리거나 가사가 틀리면 어김없이 고쳐준다. 특히 때굴때굴은 잘 해야 한다. 그 부분에서 잘못하면 잘 들어야 금방 배울 수 있다면서 호된 꾸지람도 했다. 아직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는 선생님 가사는 정말 잘 듣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열 번 쯤 부르다가 목이 말라 물을 먹고 부르자고 간청을 하니 그럼 한번 봐 주겠단다.

오늘은 춤을 추었다. 어제 배운 노래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었다. 동작이 틀리면 된통 혼이 났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별빛 같은 맑은 눈에 잔뜩 힘을 주고는

“허리에 손! 아니 틀렸어요! 다시 이렇게!”
“아니 다시, 노래와 손이 안 맞았어요! 다시”

이제 겨우 네 살 된 임율 선생님은 참 엄하기도 하다. 절대 한눈을 팔아서도 안 되고 딴 짓을 해서도 안 된다. 하긴 무용 감각 다 잃어버린 할머니를 가르치려니 제 딴에 무척 힘이 들것이 뻔하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선생님이 이제 그만 쉬자고 할머니 손을 잡아끌어 앉힌다. 그리고는 춤추느라고 애썼다고 조금 있다가 간식을 주겠다며 할머니 얼굴을 쓰다듬는다. 웃음기 함빡 머금은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던 손녀.

“할머니! 근데 할머니 얼굴은 왜 이렇게 금이 많이 갔어?”
“으응? 할머니 얼굴에 금이 갔어? 어떻게 하지?”

울상 짓는 할머니 얼굴을 펴 주겠다면서 물수건을 가져다가 열심히 문질러주던 율이는 아무래도 제힘으로는 잘 안될 것 같다고 6살 박이 오빠를 데리고 왔다. 시큰둥한 얼굴로 손자가 하는 말.

“율아 이건 금이 아니고 얼굴이 접어진 거야. 할머니가 되면 누구나 이렇게 얼굴이 접어지는 거라고 ”

얼굴에 금이 간 할머니, 얼굴이 접어진 할머니.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환자가 되어 누웠다. 두 꼬마 성형 의사들은 열심히 주름살을 문지르고 펴고 이젠 다 되었다고 거울을 보여준다.

얼굴에 예쁜 주름 꽃이 빨갛게 피었다. 이정도면 금이 많이 가도 접어진 얼굴도 괜찮다. 할머니의 금이 간 얼굴은 예쁜 아기 꽃들이 이 세상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기도하는 괜찮은 주름 꽃이다. 어쩌지, 남원 우리 집으로 내려가면 마을 사람들도 깜짝 놀라겠지. 서울 손자들 보러 가더니 몰라보게 예뻐졌다고.
 

 

형효순
전북문인협회 회원, (사)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역임
행촌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재주넘기 삼십년’, ‘이래서 산다’


우리 농어촌의 일상을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현장감 있는 목소리로 전하는 ‘농촌女담’ 코너를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그중에서도 빼어난 글솜씨로 정평이 나있는 형효순, 이길숙, 이수안 씨가 ‘농촌女담’의 필진입니다. 본보 여성면에 격주로 소개될 ‘농촌女담’에 많은 관심바랍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