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경애

산밭 과수원에는 노목들이 있다. 결혼하던 그해 봄, 새색시 때 심은 사과나무가 내 나이 예순인 지금까지 과수원 한쪽을 지켜가고 있다. 긴 세월, 수 없는 내 푸념을 묵묵히 들어준 친구라 여겨진다. 작업하기 좋은 키 작은 나무로 조성된 밭도 있지만, 나는 이 사과나무들에 더 애착이 간다.

이른 봄, 작은 눈이 트면 봉숭아 꽃물 같은 꽃들이 피어나고, 이내 올망졸망한 아기 사과가 알알이 열린다. 신속한 내 가위질에 질서 정연히 자리 잡은 사과 알들이 지금 뙤약볕을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굵어가고 있다. 올해도 사과나무는 견디기 힘든 땡볕과 한여름의 폭풍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가을이 되면 사과는 고운 빛깔로 물들면서 풍부한 향과 달콤한 맛의 사과가 될 것이다. 모든 어려움 무사히 이겨낸 후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는 어쩌면 내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순 나이에 들어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냐 묻는다면 지금이 좋다고,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편안하다 말하고 싶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별세로 홀로된 어머니의 짐을 덜고자 중매로 결혼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결혼은 현실이었다. 육남매 맏며느리로 시부님 모시고 사과 농사를 지었다. 시누이 시동생을 공부시켜야 했고 뒤이어 내 아이들이 대학을 가야 했다. 저축은 꿈도 못 꿨다. 오직 학비를 빌리는 일만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품삯을 아끼기 위해 새벽별을 친구삼아 일했다.

놀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으로 인한 갈등은 집안의 폭풍이 되곤 했다. 아이들이 학원 한번 안 다니고 대학을 마쳤을 때 나는 만세를 외쳤다. 아이들이 다 자리 잡은 지금은 내 숙제가 거의 끝난 셈이다. 지금부터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인 듯하다.

내가 살아온 농촌은 힘은 들지만 희망이 있는 곳이다. 어쩌면 기회의 땅인지도 모른다. 정년퇴직이 없는 직업이고 돈이 없어도 땅을 빌릴 수 있다. 농촌의 노령화로 땅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사과 농사가 주업인 나는 자연농법으로 농사짓는다. 좋다고 다 따라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만 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해 우리식 자연농법인 것이다. 봄엔 아카시아 꽃 녹즙을 담그고 여름엔 쇠비름, 가을엔 다시마 엑기스를 담아 농사에 이용한다. 미네랄이 풍부한 바닷물에 아카시아 녹즙을 섞어 사과에 뿌려주면 과수원은 느낌마저 달라진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지나오면서 나름의 기술도 생겼고 주위에 작은 조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과 맛이 다르다는 소문도 나고 직거래도 늘어났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걸어왔지만 이만한 농사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고 소비자들의 인정까지 받으니 부족할 것이 없다. 지금이 좋다.
 

 

금경애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모듬북 공연단 ‘락엔무’ 회원
사과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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