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한국농어민신문] 

매화꽃이 피기 시작한 2월 어느 날이었다. 휴대전화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서 보니 낯선 번호다. 일하던 중이라서 장갑 벗기가 귀찮아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산 너머 사는 이웃이다.

이웃 아주머니 말로는 시댁 행사에 갔다가 와보니, 자신의 개집에 낯선 개가 자기 개와 나란히 누워있더라는 것이다. 자신의 집은 철제울타리 안에 개집이 있어서 그동안 어떤 개도 들어오지 못했고, 자기 개도 탈출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개가 개구멍을 파서 들어왔다며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다. 흔히 말하는 개 사돈이 됐다는 통보다. 

풍산개인 우리 개는 땅파기 선수였고, 어제 무단외출까지 했으니 맞는 말 같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리 개를 지목한 데는 분명 그럴만한 근거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새끼를 낳으면 책임지겠다면서 무조건 미안하다고 했다. 어젯밤 힘들었는지 새벽에 들어와 단잠에 빠진 우리 개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묶여있어 자유롭지 않은데도 이걸 풀고 나가 아빠가 되었다니….

얼마 전에는 이웃의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개 아빠로 우리 개를 지목하여 찾아간 적이 있다. 사실 우리는 대문도 잠그지 않고 마당에서 개를 키운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줄이 끊어지고 고리가 고장 나기도 해서 무단외출을 몇 번 한지라 이웃에게 오해를 살 만도 하다. 우리 개는 흰빛에 가까운 황색이고, 어미 개는 백구였다. 그런데 새끼는 고맙게도 검정이다.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색이라서 다행히 누명을 벗었다.

이번은 달랐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개가 사라졌다. 목테와 줄 사이의 고리도 멀쩡하고 도망간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누가 데려갔으면 줄도 없어져야 하는데 줄은 얌전히 매달려 있는 게 이상하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기분이 안 좋았는데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휴대전화 달력에 이웃 개의 출산일을 저장해 놓았더니, 일정표에서 알림 소리가 들린다. 이웃 아주머니에게 조심스레 전화하니 곧 낳을 것 같다는 답변이다. 어쩌지? 한꺼번에 여러 마리 낳는다던데. 우리 집에서 다 키울 수도 없고, 분양도 쉬운 일이 아닐 테고. 요즈음은 ‘개 삽니다’라는 외침도 끊긴 지 오래되었다. 분양 광고라도 해야 하나? 두 달 동안 풀지 못한 숙제가 다시 고개를 내민다. 

“두 마리 낳았어요.” 전화기를 타고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고맙다. 그런데 두 마리가 모두 암놈이란다. 같은 핏줄의 암수를 함께 키울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개를 키우는 즐거움에 비례해서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긴 셈이다.

며칠 후 강아지를 보러 가서 “언제 데려갈까요?” 했더니 아직은 어리다면서 강아지를 손에서 내려놓지를 않는다. 너무 좋아서 뽀뽀라도 할 기세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귀여운데 그냥 키우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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