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녀

바람 센 날이다. 숲이 우우우 운다. 나무들이 제멋대로 휘둘린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숲이 운다. 숲의 크고 작은 온갖 나무와 가랑잎까지 합세해서 흔들린다. 숲이 우는 소리를 바람 소리라 해야 하나, 숲이 우는소리라 해야 하나. 매화와 산수유가 길섶을 장식하더니 산속이 불그레해진다. 참꽃이 피고 개나리도 샛노란 입술을 열었다. 목련도 벚꽃도 앵두꽃도 다투어 피어난다. 다리 밑 비렁뱅이가 얼어 죽는다는 꽃샘추위도 맥을 못 춘다.

돌풍에 들판의 비닐하우스 몇 동이 옷을 벗겨버렸다. 한창 애호박이 출하 중인데. 애호박 가격도 좋다며 웃던 이웃 농부는 탈기했다. 찢어진 비닐을 걷어내는 것도, 새 비닐을 입히는 것도 일꾼을 대지 않으면 어렵다. 동해를 입어버린 호박이 살아날 전망도 없다. 우당탕탕탕 뭐든지 굴리다가 처박는 바람의 힘에 속수무책이다. 신은 얄궂다. 비렁뱅이 비단 얻은 것도 아닌데 농부의 가슴을 찢는다. 구제역 파문 소식도 들린다. 전국에 산재한 농어촌 문우들, 부디 별 탈 없기를.

이월에 바람을 올렸든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바람 올린 기억은 없지만 이월 초하룻날 군담은 했으리라. 할머님이 정성스럽게 바람을 올리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할머니는 첫 새벽에 일어나 긴 머리를 감아 쪽을 쪘다.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속이 움푹 꺼진 자배기에 쌀을 한 됫박 담고 그 가운데 작은 대나무를 꽂았다. 대나무 끝에는 소원성취를 적은 소지가 나풀거렸다. 자배기 옆에는 물 한 그릇이 있었다. 그 앞에 초가 타고 있었다. 할머니는 합장을 하며 기도를 드렸다.

봄에 바람신을 잘 다스려야 풍년이 된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바람신을 다스릴 줄 모르고 산다. 겨울은 가뭄으로 애를 태웠고, 파종할 시기인 봄은 비도 잦고, 기온은 차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지만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는 것 같다. 자연이 심술을 부릴 때는 농부의 힘으로 다스릴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정치판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치꾼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같다. 비렁뱅이끼리 자주 찢지 말라고 일침을 놓고 싶다.

지난 가을에 준비했던 참나무 등걸에 구멍을 뚫어 표고버섯 종균을 넣는다. 남편은 구멍을 뚫고 나는 종균을 넣는다. 손가락이 아프다. 참나무 속도 얼마나 아플까. 하얀 딱지를 붙인 참나무 등걸을 쓰다듬는다.

자연과 벗하며 살다 보면 봄과 가을 표고버섯이 핀다. 소나무 숲에 자연 상태로 둔 참나무 등걸에서 피는 표고버섯은 쫄깃한 육질과 향이 일품이다.

틈새에 지난해 넣었던 표고버섯이 피어있다. 종균을 넣다 허리가 아프면 망태 들고 버섯을 딴다. 갓이 십자형으로 쪼개진 버섯은 사랑스럽다. 버섯뿐인가. 모든 동식물도 자랄 때는 사랑스럽고 귀엽다. 사랑을 받아야 자랄 수 있기 때문일까. 멋과 거리가 먼 자연 그대로 늙어가는 촌부도 사랑스러울까.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해 본다.

“여보, 나 사랑스러워?”
 

 

박래여
전원생활체험수기 공모 대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8회 여수 해양 문학상 소설 대상, 현대 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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