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세상 엄마들이 다 그렇듯이 나 역시 아이들이 최대한 가공식품을 멀리하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다. 식사는 물론이고 시간과 재료가 허락하는 한 간식도 만들어 먹이려고 하고 있고, 식사대용품이나 간식거리를 구입할 때에는 재료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급간식을 반드시 친환경급식으로 해야 한다는 규제가 없기 때문에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맛보고 온 소시지 맛을 좋아했고, 시리얼에 감탄하며 우리도 집에서 이런 걸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에 엄마인 나의 식사와 간식 주도권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청소년이 되고는 먹을거리에 대한 엄마의 간섭과 통제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순간이 점점 많아졌다. 언젠가는 내가 치킨을 사주지 않자 아이들은 뭔가를 속닥속닥하더니 머리띠를 두르고 스케치북에 구호를 적어 거실로 나와 앉아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 가사를 개조해 “한국을 빛낸 100마리 닭들”을 불렀다. 시리얼을 사주지 않자 시리얼은 엄마의 가사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사주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말이다.

“엄마가 집에서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이렇게 푸념을 하면 “세상이 온통 좋은 음식들만 살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지, 우리들 탓은 아니야.”라는 사회성 듬뿍 담긴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린이집, 유치원 때와 달리 아이들이 초등학생, 중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교급식이 친환경급식으로 제공되어 좋은 먹거리를 먹는 기회가 더 많아지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급식 이야기를 즐겁게 자주 하는데 “세상에나 먹어보고 싶었는데 마라탕이 나왔어”처럼 메뉴의 종류를 말하기도 하고, “치즈케이크가 나왔어”하고 디저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SNS에서 회자되고 있는 어느 학교급식 사진을 보여주며, “이 학교 영양선생님 대박”이라고도 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고 덩달아 아이들과 나누던 학교급식 관련된 이야기도 중단되었다.

그사이 우리 집 식비는 거의 두 배로 늘었고, 나의 가사노동도 그만큼 늘어났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이 상황. 감염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하니 식비도 늘고, 가사노동이 늘어나는 것을 감내하는 것도 이 시대를 견디고 넘어서야 하는 부모의 몫이겠지만 학교급식 생산자 분들은 어떨 지, 학교급식 조리원들의 고용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마음 한 쪽에서 걱정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힘들고 어렵지만 코로나19 앞에 학교급식 생산자들이 바람 앞에 등불 같아졌다. 몇몇 지자체에서 소비되지 못한 친환경학교급식 농산물을 파는 이벤트가 진행되더니 미사용 무상급식 예산을 활용해 채소와 과일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농산물 꾸러미를 초중고 가정에 배송한다는 여당의 공약과 몇몇 지자체의 정책이 발표되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학교급식은 채소와 과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2017년 기준 학교급식 식재료의 36%는 공산가공품이다. 23%가 축산물, 농산물이 20%, 양곡류가 8%를 차지한다. 학교급식 식재료에서 공산가공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1/3 이상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급식 꾸러미를 농산물로만 구성할 경우 학교급식의 한축을 담당해온 공산가공품 업체는 줄도산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이들 업체가 경영난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해고 등 인적 구조조정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들 업체가 도산한다면 이후 급식 현장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초중고 가정에 공급할 급식 꾸러미 구성 품목에 공산가공품이 포함되어야 하고, 생산농가에 대한 지원은 물론, 금융지원, 인력유지 지원, 대금 선지급 등 이들 업체에 대한 특별 지원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급식꾸러미는 일부 지자체의 정책이 아닌 중앙부처, 교육부의 일괄 지침이어야하며, 향후 재난이 발생할 때 학교급식 시스템을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매뉴얼도 제작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각 지역 교육청과 각 지자체가 별도로 협의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또 중앙부처 지침이 나온 후에 혼란을 겪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참에 비인가·인가 대안학교, 방송통신중·고등학교, 학교 밖 청소년들 모두에게 어떤 조건도 없이 급식비 제공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급식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먹는 밥이기도 하지만 교육권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가 국민의 영양을 증진하고 결식을 구제해온 수단이기 때문이다. 공공급식인 학교급식이 사회적 재난을 딛고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가 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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