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리는 소농보다는 대농이, 농가보다는 기업이,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좋은 제품이 생산되고 식품위생이 보다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역시 안전하고 깨끗하고 믿을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러나 이번 도너츠 사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제품의 생산 여부와 식품위생은 결코 규모로 결정되지 않는다. 

ㅣ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우리는 소농보다는 대농이, 농가보다는 기업이,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좋은 제품이 생산되고 식품위생이 보다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역시 안전하고 깨끗하고 믿을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러나 이번 도너츠 사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제품의 생산 여부와 식품위생은 결코 규모로 결정되지 않는다. 

온 국민의 빵집, 온 국민의 커피가게, 온 국민의 아이스크림 가게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유명식품그룹. 그 그룹 계열사 대표 생산품의 하나인 도너츠 제조 과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누구나 알만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봤을 만큼 유명한 도너츠라 시민들이 받는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어머나, 세상에, 대기업인데 이럴 수가’ 뉴스를 보면서 나도 기가 막혔다. 일부러 누군가가 조작한 영상을 올렸다는 업체 측의 주장도 있으나 식약처에서 이 업체의 식품위생법 위반사항을 적발했으니 비위생의 정도가 어느 수준이었는 지의 차이만 있을 뿐 제조 과정이 비위생적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 셈이다. 해썹 부적합 판정도 있었으니 굴지의 식품 대기업으로서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했다는 비판은 비켜 갈 수도, 비켜 가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느 농부나 그렇듯 십여 년 전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 크기가 작거나,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살짝 흠이 있어 외면받는 농산물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가 큰 숙제로 다가왔다. 주변 분들에게 드시라고 나누어주는 것도 한두 번이고, 저장 등의 문제가 있으니 가족들이 두고두고 먹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소농으로 농산물 꾸러미 회원제를 운영했다. 회원분들 모두 함께 농사짓는 마음을 가져주셔서 작은 것, 울퉁불퉁한 것도 보내드렸다.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선별하고 보내드린 터라 차마 보내 드리지 못하고,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농산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애써 농사지은 농산물을 버려야 할 때는 농산물이 자식 같다는 말을 알 수 있을 만큼 속상한 마음이 깊고 깊었다.

그래서 농부들이 즙을 짜고, 가공식품 만들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구나 하고 6차 산업의 필요성도 실감하게 되었다. 집에서 우리 농산물로 담근 고추장, 된장, 간장을 회원분들에게 보내드리거나 팔려고 해도 안되는 이유가 많고 많았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농산물로 가공을 좀 해보려 하니 시설을 만들 만큼 생산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 뻔했고, 설비를 갖추거나 식품 가공 공장을 만들 만큼의 재정적 여력도 충분치 않았다. 고추와 고춧가루가 법률상 다르게 구분된다는 것도 농부가 되는 순간 바로 알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1차 농산물과 가공농산물이 어떻게 구분되는 지 모르는 농가들이 의도치 않게 자가 재배한 농산물을 단순 가공 판매한 것을 두고 ‘식파라치’들이 마치 무등록 무신고 영업인 것처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신고했다는 소식을 간혹 듣기도 했다. 미국이나 이탈리아 같은 해외에서는 소농들도 식품을 제조 가공 판매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농가들은 언제 그렇게 될까 싶었다.

소농들이 이런 고민을 많이 하자 일부 지자체에서는 ‘농가 소규모식품 가공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지자체에서 이런 조례들이 만들어지자 식약처는 식품위생법의 시설기준을 완화하기도 했고, 같은 고민을 하는 농가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공동가공시설을 만드는 사례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법률상 일부 조건이 완화되고, 농가들이 직접 또는 공동으로 식품 제조 가공 시설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 많아졌어도 식품위생법은 소농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는 일의 특성상 소농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농산물의 유통이나, 가공식품과 체험 키트를 만드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설비 기준 등 소농들이 식품위생법의 두터운 현실의 벽에 얼마나 많이 부딪히고 있는 지 저절로 알게 된다. 어렵사리 공장을 만들거나 공동가공시설을 이용하게 되어도 대기업 제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시장 진입에 성공을 하고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면 이제는 대기업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규모의 경쟁으로 압박을 가한다. 그리고 00농가의 제품을 카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면 몰랐다고 하며 형식적인 사과를 보탠다.

우리는 소농보다는 대농이, 농가보다는 기업이,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좋은 제품이 생산되고 식품위생이 보다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역시 안전하고 깨끗하고 믿을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러나 이번 도너츠 사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제품의 생산 여부와 식품위생은 결코 규모로 결정되지 않는다. 

모든 농가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농가들이 가공, 제조 판매를 원한다. 그렇게 했을 때 소득이 향상될 기회를 만들 수 있기도 하고, 잉여농산물이라는 이름으로 농산물이 버려지는 일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가의 식품 제조 가공 활성화는 농촌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이기도 하고, 후계농과 청년농이 육성될 구조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로컬푸드 활성화와 탄소중립, 지역 푸드플랜, 지역 음식문화의 고유한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규모가 크고, 대기업화되면 무조건 위생적이고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소농을 위한 식품 관계 법령을 제정하는 시대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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