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객지에서 생활해야 하는 청년이나 빈곤층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거지인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지옥고라고 불리운다. 주거의 지옥고는 부엌이 없거나 부엌이 있어도 부엌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지옥고에 비해 조금 안전하고 괜찮은 주거환경에 있다 하더라고 전적으로 매식에 기대야 해서 생활비 중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저절로 높아진다. 

ㅣ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첫째가 여덟 살 때, 쌍둥이들이 일곱 살 때 장수로 내려왔는데,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이 아이들이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첫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안 요리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10대에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독립을 시키기가 두려워 성인이 되기 전까지 외할머니집에 거주를 했고, 지난해 겨울 독립을 하게 되었다.

어디로 독립을 해야 할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서민 중에 서민인 농촌생활자인 내가 보낼 수 있는 집이 서울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지낼 수 있을 만한 원룸은 너무 비쌌고, 가격이 조금 저렴하다 싶으면 말이 원룸이지 구조도 이상했고, 도무지 사람이 살만한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고시원은 보내기에 마음이 불안했다. 무엇보다 집에서 요리를 좀 해먹을 수 있게 부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시원은 대체로 부엌이 없었다.

간혹 공동부엌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런 곳은 부엌이라기보다는 편의점 한구석처럼 전자레인지를 돌리거나 음식을 꺼내어 먹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좋은 집은 아니지만 우리집은 단독의 농가주택이라 주변에 산이 있고, 마당이 있어 탁 트이는 느낌이 있다. 부엌도 크다. 농사를 짓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집에는 늘 먹을 것들이 있었고, 나는 집밥을 잘 해주는 엄마였다. 이런 집에서 살다가 서울이라는 곳에서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추려면 부엌도 없는 집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오니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셰어 하우스였다. 온전히 혼자의 공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엌이 있고, 요리가 가능한 공간, 경제적으로는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첫째에게 월세 셰어하우스를 구해주었고, 첫째는 그곳 부엌에서 요리를 해서 밥을 먹었다. 전셋집을 해준 것도, 단독 월세집을 해준 것도 아니지만 부엌이 있는 공간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첫째가 독립한 지 몇 개월 차이로 둘째와 셋째도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셋이 같이 살 집을 구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서울에 전셋집을 얻어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가 아닌 셋째는 큰언니에게 잠시 부탁해서 이모집에 기거하게 되었고 둘째는 학교기숙사로 들어갔다. 셋째는 큰언니네에 있으므로 먹을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거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문제는 둘째였다. 둘째가 다니는 대학 기숙사는 방으로 음식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냉장고가 있는 것도 공동부엌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오늘은 뭘 먹었니” 하고 무엇보다 먼저 묻게 되었다.

둘째가 학식을 먹거나 학교 근처 식당 밥을 먹는 일을 하루에 두 번 이상은 하고 있으니 내 머릿속에도 저절로 그 대학 학식 메뉴판과 주변 식당 지도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날마다 음식을 사 먹는 일은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무엇보다 지겨운 일상인 것 같았다. 기숙사 건물에 공동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숙사 방에 음식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으니 둘째는 신선야채와 과일을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과일을 사도 보관할 곳이 없으니 둘째가 신선야채와 과일을 먹으려면 편의점에서 샐러드를 사거나 낱개로 소포장된 과일을 하나 사 먹는 게 다였다. 학식이 맛있다면서도 어느 날은 “아, 학식 지겨워” 했고, 어떤 날은 “과일이 진짜 먹고 싶다”고 했다. 어버이날에 맞추어 집에 왔을 때에는 “드디어 집밥을 먹어”, “와! 과일을 먹는구나”하고 기뻐했다. 어제는 저녁에 무얼 먹었냐고 물었더니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먹었다고 했다. 오늘은 무얼 사서 먹어야하는 지도 고민하지만 식비가 많이 드는 것을 걱정하고, 식비를 더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했다.

객지에서 생활해야 하는 청년이나 빈곤층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거지인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지옥고라고 불리운다. 주거의 지옥고는 부엌이 없거나 부엌이 있어도 부엌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지옥고에 비해 조금 안전하고 괜찮은 주거환경에 있다 하더라고 전적으로 매식에 기대야 해서 생활비 중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저절로 높아진다. 인터넷에는 라면을 끓여서 면을 먹고, 국물을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냉동밥을 말아서 먹었다거나 하는 지옥고에 있는 청년들의 식비를 아끼기 위한 갖가지 경험담이 널려있다. 주거의 지옥고는 먹거리 지옥고임 셈이다.

1인 가구 청년이나 주거빈곤층의 먹거리빈곤은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20년 서울시의 먹거리 통계 조사에 따르면 ‘양적, 질적으로 식품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응답자의 44.6%가 1인 가구였다. 지난해 서울시가 1인가구와 청년먹거리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5월 서울 은평구는 나눔냉장고, 나눔도시락 등 청년 1인 가구의 건강한 먹거리환경 조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이 먹거리 환경 조성을 넘어 2020년 시작된 농식품 바우처와 함께 먹거리기본권을 보장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희망해본다. 주거 지옥고의 고통이 먹거리 지옥고의 고통으로 연장되지 않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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