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최근 78억 마리의 벌이 사라졌다는 뉴스에 이어 충청권에서는 5652여 양봉 농가 중 1462곳이 집단폐사 피해를 입었고, 피해 규모는 많게는 40억 마리에 이른다는 뉴스도 이어졌다. 농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 지금 꿀벌의 소멸은 양봉업자의 문제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결단코 아니다. 도시양봉을 장려하고, 밀원식물이 자라는 크고 작은 정원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

ㅣ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우리 마당은 민들레와 토끼풀 천지다. 농촌에 살고 있으니 근처에 논밭이라도 있으면 지나가는 어르신들 모두 한마디씩 하시기 딱 좋은 마당이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구비구비 올라가는 산자락에 집이 있다. 아무리 우리 마당이어도 가끔은 나도 민들레와 토끼풀에 심어놓은 다른 꽃들이 위축될까 걱정되기도 한다. 솔직하게 민들레 홀씨들이 하얗게 퍼져나가면 정신 사납게 느껴지는 순간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어떨 때는 결심을 하고 조금 뽑아내기도 한다. 그래도 마당에 민들레와 토끼풀을 최대한 그대로 놓아두려고 하는 건 벌들 때문이다. 민들레와 토끼풀이 밀원식물 중 하나라고 해서 말이다. 실제로 민들레와 토끼풀이 우리 마당에 꽃을 피우면 피울수록 벌들이 날아온다. ‘지구에 벌들이 자꾸만 사라진다는데 그래 나라도 밀원식물이 자라도록 해야지, 이건 풀을 키우는 게 아니야’하고 속으로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한다.

2010년도에 서울환경영화제에 출품된 ‘트럭 농장’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낡은 픽업트럭을 개조해 텃밭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귀농 2년차였던 나에게는 농촌에서의 농사뿐만 아니라 도시농업의 중요성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좋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영화를 대여해와 마을 상영회를 하기도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미국의 도시 한복판에서 꿀벌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설혹 이 기억에 오류가 있어 다른 영상을 보고 알았다고 해도 이즈음의 나는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빌딩 옥상에 벌통을 가져다 놓고 꿀벌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때여서 대도시의 양봉 사례는 나로 하여금 벌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했다.

그 후로 꿀벌과 관련한 뉴스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는데 다들 아시는 것처럼 그 모든 소식들은 사라지는 꿀벌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농촌에 살고 있으니 꿀벌이 줄어들어 과일을 주요 작목으로 하는 이웃 농가들이 수분 적기를 놓치거나, 수분이 제대로 되지 않아 걱정하는 상황을 자주 보게 되기도 했다. 꿀벌이 사라지는데 다양한 이유들이 분석되고 있지만 농약 때문이건, 이상 기후 때문이건, 분명한 것은 꿀벌이 사라지는데 결정적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2012년 서울시는 도시농업 원년을 선포하며 서울시청 옥상에 5개의 벌통을 놓고 도시양봉을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서울시가 관리하는 공원과 자치구의 텃밭으로 벌통을 놓기 시작,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도시양봉의 규모가 커졌다. 서울과 수도권, 대전 등의 여러 지자체에서는 도시양봉 학교를 운영한다. 도시민들이 직접 벌의 생태와 양봉을 배우는 학교이다. 점점 도시양봉 학교를 운영하는 지자체가 늘어가는 것을 보면 양봉의 매력이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의식과 맞물려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도시농업이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듯, 도시양봉 또한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대안이 될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도시민의 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 도시와 농촌이 함께 발전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지난 2017년부터 ‘도시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양봉 역시 이 법령에 따른 도시농업에 포함된다. 그러나 법령과 다르게 도시농업으로서의 도시양봉에 대한 인식은 미미하고, 도시양봉의 정책적인 노력도 부족하다.

최근 78억 마리의 벌이 사라졌다는 뉴스에 이어 충청권에서는 5652여 양봉 농가 중 1462곳이 집단폐사 피해를 입었고, 피해 규모는 많게는 40억 마리에 이른다는 뉴스도 이어졌다. 농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 지금 꿀벌의 소멸은 양봉업자의 문제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결단코 아니다. 도시양봉을 장려하고, 밀원식물이 자라는 크고 작은 정원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

올해 지역 아동, 청소년들과 텃밭 수업을 정기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냥 밭을 만들고, 작물과 꽃을 심기만 해도 되는데 비장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밀원식물 정원이 될 수 있는 생태 텃밭을 만들기로 했다. 학생들이 어려워하지 않을까, 흥미 없어 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걱정을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거치며 환경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기후위기를 실감하고 있어서 눈을 반짝거리며 활동한다. 꿀벌이 농업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인식했다. 학생들이 텃밭을 직접 디자인해보기도 했고, 밀원식물로 무엇을 심을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동반작물을 심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텃밭 수업을 시작한 중학교 학생들과는 바람개비를 만들고, 학교 안에서 찾은 밀원식물 근처에 바람개비를 꽂아 표시해주기도 했다.

바람개비가 돌 때마다 학생들은 밀원식물을 떠올릴 것이다. 이 참에 나도 지역에서 학교양봉을, 빌딩 양봉을 시작해보아야겠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꿀벌처럼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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