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리는 안다남의 나라, 우리나라 가릴 것 없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뭘 먹지가 아니라 오늘 한 끼를 먹을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는 것을.

ㅣ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내 어린 시절의 주된 기억은 놀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내 또래 많은 분들의 기억이 그러하듯 나 역시 친구들과 날마다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숨바꼭질과 말타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놀았다. 또 어떤 날은 땅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장난감 그릇에 흙을 넣어 밥을 짓고, 한 줌 풀과 빨간 벽돌을 빻아 만든 고춧가루로 김치를 담그고, 작은 돌을 감자 삼아 밥상을 차렸다. 그리고 다정한 엄마라도 된 듯 “00야, 밥먹어라” 그렇게 친구들과 둥그렇게 둘러앉아 냠냠 먹는 시늉을 하다 보면 세상에 이만한 성찬이 없었다.

나의 아이들도 어린시절 나처럼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놀았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소꼽놀이를 하다가 흙에 꽃을 올려 꽃케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어린 시절 흙으로 밥 짓고 놀던 기억도 나고,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꽃을 올려 흙케이크를 꾸민 그 마음이 예쁘기도 해서 사진을 찍고 두고두고 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먹을 것이 없어 흙으로 과자를 구워 먹는 이들의 뉴스를 본 후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내내 복잡해졌다.

우리는 안다. 누군가는 소꿉놀이로 흙밥을 짓고 놀지만, 지구 한쪽에서는 놀이가 아니라 먹을 것이 없어 허기를 가리기 위해 흙으로 과자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남의 나라, 우리나라 가릴 것 없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뭘 먹지가 아니라 오늘 한 끼를 먹을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어디 가서 더 맛있는 것을 먹을까를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뭐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누군가 굶주리고 있어도 버려지는 음식이 수북하다는 것을. 가난과 기아는 여전히 누군가의 큰 고민이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6월 18일은 UN이 정한 ‘지속가능한 미식의 날(Sustainable Gastronomy Day)’이다. 지속가능한 미식은 지난 2016년 UN이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 미식이란 좋은 음식을 먹는 행위를 말하기도 하고, 음식과 문화의 관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기술, 특정 지역의 조리 방식 등에 관한 연구를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속가능성이란 인간이 삶의 터전으로 삼는 환경과 생태계 또는 공공으로 이용하는 자원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적 또는 경제ㆍ사회적 특성을 말한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미식이란 환경에 해를 가하지 않고,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고, 생산부터 소비되는 먹거리사슬 과정이 공정한 재료로 요리를 하며, 지역의 요리법, 지역의 음식 문화다양성이 인정된 음식을 먹는다는 뜻을 의미하게 된다.

UN이 지속가능한 미식의 날을 정한 배경에는 영양가 높고, 좋은 음식에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식량시스템을 만들고, 농업이 생태적으로 또 산업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미식의날은 우리사회가 풀어가야 할 먹거리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제를 현실화하기 위한 정책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고 행동하는 날이어야 한다. 지구의 날에 짧게라도 소등을 하고 누구라도 쉽게 참여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지속가능한 미식의 날은 공공기관을 통해 알려지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고, 안다 해도 참여할 활동도 마땅치가 않다. 농식품부는 물론이고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에서도 지속가능한 미식의 날에 대해서 아무 말도 없다. 푸드플랜을 논의하고 있는 지자체, 로컬푸드매장, 그 어디에서도 지속가능한 미식의 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부 먹거리 활동 단체들이 의미를 알리기 위한 이벤트를 열 뿐이다. UN이라는 국제사회가 만든 날임에도 참으로 공허한 날이 아닐 수 없다.

2021년 6월 기준 전국 110여개에 달하는 지자체들이 푸드플랜을 만들고 있으며, 농식품부는 지역의 푸드플랜과 기존의 농식품부 및 관계부처 지원사업과 연동하는 ‘패키지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푸드플랜은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공급하며, 먹거리복지체계를 구축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먹거리 선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푸드플랜은 논의되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논의는 실행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실행력 없이 테이블의 논의로 국한되기도 하고, 먹거리보장 체계 없이 로컬푸드 매장이 만들어지거나 그 수를 늘리는 것, 정부의 푸드플랜패키지 지원사업으로만 그 결과가 나타난다면 푸드플랜이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지역(로컬)을 전제로 하는 푸드플랜은 지역의 음식문화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농업과 지속가능한 먹거리보장체계, 그리고 이것의 결과물인 지속가능한 미식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6월 18일이 다가온다. 그저 단 한 줄의 문구라도 좋으니 농식품부와 푸드플랜을 마련하는 지자체, 로컬푸드 여러 매장에서 지속가능한 미식의 의미를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해를 거듭하며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지속가능한 미식의 날을 기념할 수 있기를, 공정한 먹거리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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